최형일 명장은 5번째 도전 끝에 대한민국 제과 명장이 됐다. 고배를 마시는 4년 동안 그는 늘 자신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스스로의 기술력에는 확신이 있었기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명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형일 명장의 자기 확신은 그가 처음 제과업에 입문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재단사에서 제과 기술자로 전향하며 ‘이 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기술자가 되자’고 다짐했던 그 순간부터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을는지 모른다.
재단사에서 제과 기술자로
전남 고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최형일 명장은 귀경해 서울 신림동의 한 양장점에 취업했다. 재단사로 꿈을 키우던 그 무렵, 대한민국 의류업계 흐름이 바뀌었다. LG와 삼성을 필두로 거대 자본들이 출시한 기성복 브랜드가 붐을 일으키며 옷을 맞춰 입는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최형일 명장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맞은편 빵집이었던 ‘레피도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의식주 중에 빵은 분명이 ‘식’에 해당할 것 같더군요. 빵을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 굶을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정말 이제는 식사대용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끼니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당시 내렸던 판단이 맞아서 참 다행입니다. 제과일을 선택한 건 제 인생에 있어 행운이에요”
최형일 명장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유명했던 ‘나폴레옹 과자점’에 면접을 보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위아래로 맞춰 입은 밤색 양복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말이다. 겉모습을 보고 넘겨 짚어 “얼마 못 가 도망갈 놈”이라 부르던 선배들은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최형일 명장은 동년배보다 시작이 늦었기에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반죽을 만지는 일은 상상도 못했고, 동갑내기 선배들의 뒤치다꺼리에만 1년을 보냈다. 당시 나폴레옹의 노동 강도와 위계질서는 악명 높았지만 그는 견뎠다. 술, 담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근 이후의 시간은 연습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년, 1년이 지나자 타고난 성실함이 그에게 응답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이룬 끝에 생산 총괄 차장 자리에 올라 5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며 나폴레옹의 살림을 도맡았다. 그렇게 그는 나폴레옹 10년 근속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없는 게 없는 동네빵집, 엘리제 과자점
최형일 명장은 ‘엘리제 과자점’을 서울 북쪽 끝자락인 상계동에 오픈했다. 서울 중심부와 거리가 있는데다 반경 1km에 빵집이 7개나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선 걱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최형일 명장은 ‘맛있는 빵은 어디에서든 통한다’, ‘빵을 고르는 맛이 있는 빵집이 살아남는다’라는 자신의 제과 신조 아래 엘리제를 만들어갔다. 버터크림 케이크가 보편적이었던 1990년대 당시, 제누아즈에 시럽을 발라 촉촉한 생크림 케이크는 동네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 200가지가 넘는 다양한 제품,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기간마다 등장하는 시즌 메뉴,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는 인근 백화점 세일 기간에 맞춰 진행하는 할인 이벤트 등은 고객들에게 큰 즐거움이 되어 줬다. 필연적으로 엘리제는 상계동은 물론 서울 북부에서 널리 사랑받는 동네빵집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최형일 명장에게는 배움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그의 조력자인 아내의 지지와 응원 아래 최형일 명장은 2006년 호원대학교 식품외식조리학부에 입학해 만학도로서 꿈을 이루며 주변에 귀감이 됐다. 배움이라는 자극은 그가 더 높이 올라가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2010년 학사 졸업 후 그는 더 큰 도전에 나섰다. 평소 관심을 가졌던 초콜릿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기술적인 훈련을 거쳐 국제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최형일 명장은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쿠프 뒤 몽드 드 라 파티스리’에 한국 대표 초콜릿 선수로 참가했고, ‘베스트 초콜릿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때의 자부심으로 최형일 명장의 엘리제에는 수제 초콜릿을 상시 메뉴로 판매한다. 초콜릿 전문점이 점차 늘어나며 많은 제과점들이 초콜릿 생산을 중단하거나 OEM 제작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엘리제는 과거의 명맥을 이어가며 예나 지금이나 ‘없는 게 없는 동네빵집’이다.

2022년, 대한민국 제과 명장으로 선정된 이후에도 최형일 명장의 루틴에는 변화가 없다. 매장을 오픈하는 것도, 식물에 물을 주는 것도, 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독려하며 주기적으로 메뉴를 살피는 것도 모두 그의 일이다. 꾸준함과 부지런함은 제과 기술자가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최형일 명장은 말한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베이커리를 운영하기에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올라 수익 구조가 나빠지고 경쟁도 치열해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때문에 이 일을 접는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른 업종도다 마찬가지일테니까요. 여러분이 이왕 빵에 매력을 느끼고 이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면 남들보다 좀 더 부지런히 기술을 터득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하길 바랍니다. 성실함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답합니다. 그 보답을 느끼기에 제과 제빵일은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정말요.”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혜아 기자 hyeah01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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