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성수동의 좁은 골목 어귀에서 커피 향이 진하게 풍기는 ‘블랙 로드커피 성수(Black Road Coffee Seongsu)’가 새로운 시작을 알렸 다. 2021년도부터 대구에서 블랙로드커피를 운영하던 이치훈 대표는 그동안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콘셉트의 카페를 기획했다. “블랙로드는 ‘커피 탐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커피를 알리는 브랜드입니다. 새로운 커피를 찾고 소개하는 과정이 탐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에요. 성수점은 조금 더 특별하게 ‘전 세계 상위 1%의 커피를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콘셉트를 잡아서 도슨트와 영상을 함께 제공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매달 한 농장의 원두를 집중적으로 다루며그 원두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재배했는지 손님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손님은 그 원두를 눈, 코, 입 모든 감각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 커피 박물관
박물관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내부도 실제 갤러리나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문을 열자마자 커피 체리가 원두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목공예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리스타이자 도슨 트는 원두와 커피 농장에 대한 안내를 차분히 시작한다. 원두에 대한 소개를 듣고 난 후 옆방으로 이동해 생두가 재배된 농장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는데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원두에서 느껴지는 노트와 동일한 노트를 가진 향수를 방 안에 뿌려두는 것. 원두의 노트가 라벤더, 살구, 초콜릿이라면 같은 노트의 향수를 찾거나 조향사의 도움을 받아 제작하기도 한다. “호텔이나 명품 매장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좋은 향이 나는 것에서 착안했습니다. 커피계의 명품을 소개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영상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커피를 즐기는 순서가 돌아온다. 해당 원두에 적합한 추출 도구를 사용 하며, 커피만을 위해 주문 제작한 컵을 사용하는 등 특별한 경험이 계속된다. 1회당 4명의 손님만 받으며 그 시간 동안 오롯이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에 만족도는 더욱 높다.


파인 커피란?
이런 특별한 콘셉트를 잡게 된 것이 바로 ‘파인 커피’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됐다는 이 대표. 그는 파인 다이닝을 모티브로 삼아 파인 커피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페셜티 커피가 더 이상 스페셜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보다 훨씬 좋은 커피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일반적인 카페가 아닌, 새로운 공간과 콘셉트로 보다 깊이 있게 커피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매년 파나마에서 재배한 커피 중 최상의 커피를 선별하는 ‘BoP(Best of Panama)’에서 수상한 원두를 들여오는 등 좋은 커피를 찾기 위해 매달 원두 샘플링에만 00~150만 원 정도를 쓰고 있다는 블랙로드커피.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같은 평범한 메뉴나 디저트는 없지만 다른 곳에선 쉽게 맛볼 수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커피를 이곳에서는 만날 수 있다.

커피 농장과의 인연
여느 카페들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는 원두를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에는 이치훈 대표의 열정이 밑받침되어 있다. 그는 그린빈 바이어로서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파나마 등 10개국의 커피 산지를 직접 다녀오 며, 농장주들과 연을 이어오고 있다. “성수점을 오픈하기 일주일 전, 파나마에 위치한 농장 ‘에스메랄다’의 주인과 농장 ‘엘리다’의 농장주 아들이 방문했었습니다. 저희가 커피 한 잔을 위해 물, 잔, 영상, 도슨 트, 추출 도구까지 맞춘 걸 보고는 크게 감동하더라고요. 그들의 방문이 저에게도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 순간으로 남습니다.” 엘리다는 무려 7번 이상 BoP에서 1위를 한 유일무이한 이력을 가진 곳으로, 세계 에서 가장 비싼 커피 ‘*아구아카티요’를 탄생시킨 ‘라마스투스’ 패밀리의 농장이다. 그리고 이 농장에서 이치훈 대표가 원하는 커피는 모두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는데, 아마 커피에 있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의 진심을 알아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구아카티요(Aguacatillo)는 2022년, 1kg에 2,000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낙찰되어 유명해졌다. 단 3kg만 수확되어 당시 대만과 두바이에서 구매해 갔다.

커피인들의 어플, 커피도감
이치훈 대표는 카페 운영 외에도 수많은 커피인들에게 사랑받는 ‘커핑포스트’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이후 ‘커피도감’이 라는 어플까지 개발했는데 여기에 내가 마신 커피에 대한 기록을 간단하게 남길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느꼈던 맛과 향을 시간이 지나면 까먹는 것이 아쉬워 개발 하게 됐다는 이 어플은 10잔의 커피에 정성스러운 리뷰와 평점을 남기면 나만의 커피 취향까지 분석해 준다. 이렇게 나만의 커피도감이 완성되다 보면 품종, 로스팅, 가공등 커피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까지 열람이 가능해진다. “이 어플을 제작하는데 7,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커피 업계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만들었습니다.”

카페, 유튜브, 어플 개발은 결국 파인 커피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 이치훈 대표. 블랙로드커피 성수가 커피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전 세계 커피인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 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커피 한 잔에 담긴 가치를 아는 이들이 늘어 나는 그날까지 그는 변함없이 여러 커피를 탐험할 것이다.

7월 커피 전시에 소개된 엘리다 농장의 커피 3가지를 50g 씩 구매할 수 있는 세트. 파나마 엘리다 토레 게이샤 워시 드/ 아구아카테 내추럴/ 부엘타 내추럴 모두 다크룸 드라이한 원두로 한정적인 양만 생산되었다. 특히 부엘타와 아구아카테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서두르자.

작년 태국 ‘CoE(Cup of Excellence)’에서 3위를 했던 농장 ‘소프트 커피’에서 재배한 생두를 가공해 만든 원두. 미디엄 라이트 로스팅으로 블루베리, 복숭아, 오렌지, 허니의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50g씩 소분해서 판매 중이다.

복숭아 같은 산미와 달콤한 단맛이 일품인 블랙로드커피의 베스트 셀러다. 1년 중 가장 좋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찾기 위해 100가지 이상의 샘플링을 하는 만큼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 840g씩 소분된 패키지다.

직원을 뽑는 기준이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저희 매장에 방문했던 손님 중에서 뽑고 있어요. 매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고 지원하는 분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부족 하거나 실력이 떨어져도 괜찮아요. 그 브랜드를 애정하다 보면 자연스레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일단 출근하면 주위에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만 가득하다 보니 커피에 더 깊이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실 도슨트에게도 특별한 교육은 따로 진행하지 않죠. 다들 알아서 공부합니다(웃음). 한 달에 30가지, 많게는 100가지 정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보니 커피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최적의 환경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처음 커피 산지로 떠나게 되신 계기는요?
대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때, 우연히 어떤 모임에서 커피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커피나무의 각도가 어떻고 잎의 모양이 어떻고 이런 이야길 하는데 제가 아는 바가 없으니 끼어들 수가 없더라고요. 그 길로 커피 산지에 직접 다녀와 봐야겠다 는 결심을 하고 떠났죠. 그리고 처음 방문했던 콜롬비아 커피 농장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커핑포스트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1시간 가량 되는 긴 영상이었는데, 그 영상을 보고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분과 커피 농장에 관심이 생겼다는 분들이 생기며 많은 응원을 받았죠. 이후 최소 25 개국의 커피 농장을 방문해 보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렇게 다니다 보니 지금 벌써 열 군데의 커피 산지를 다녀오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커피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커피란 예술과도 같습니다. 전시장에 걸린 한 점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커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희소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바로 그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매일 보람을 느낍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커피 들이 많은데요, 그 커피들이 담고 있는 가치를 앞으로도 진심을 담아 전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커피를 내리고 싶습니다.
블랙로드커피 성수
주소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19-18 2층
인스타그램 @black_road_seongsu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박다솔 기자 bbbogiii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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