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는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복잡한 문제도 그간 고민한 시간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간단히 풀리곤 한다. 대게 현자의 큰 가르침 같은 것이 아니라, 지극히도 단순한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으로 말끔해진다. 매장을 방문하기에 앞서, 셰프들과의 인터뷰를 위해 사전에 질문을 준비한다. 인터뷰어로서의 어찌할 수 없는 욕구인걸까. 허를 찌르는 질문도 곁들이려 한다. 그리곤 제멋대로 셰프들의 대답을 추측해보곤 하는데, 가끔 그들의 대답에 되려 허를 찔리는 순간들이 있다.
이번 '베카라이 비오브로트(BACKEREI BIOBROT)' 마츠자키상과의 인터뷰가 그랬다. 그럴듯하게 복잡미묘한 대답을 상정하며 정성껏 준비한 질문들이 간단명료한 사실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수학문제를 물려 온갖 이론들을 대입해보았지만 결국은 덧셈으로 풀리는 문제인 것과도 같았다.
일본에서 독일빵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오래 사랑받고 있는 베카라이 비오브로트의 마츠자키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독일에서 오랜 시간 수련하여 마이스터(Meister) 자격까지 취득했다. 빵의 고장이라 불리는 독일에서 빵을 만들며 느낀 것, 그리고 일본 제빵 업계와 독일 제빵 업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독일 제빵 업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마이스터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하는 직업 교육 시스템 '아우스빌둥(Ausbildung)'이 있다는 점이다. 첫 3년간은 견습공(Lehrling)으로서 가게는 해당 인력에게 빵을 만드는 공정 전반을 가르쳐야 한다. 만약 자신이 속한 업장이 냉동 크루아상 생지를 받아 판매하는 곳이라면, 다른 가게에서 믹싱과 라미네이션을 배우러 이동해야 한다. 이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채 배워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다. 3년간 커리큘럼이 충족되면 이론과 실기 시험을 보고 숙련공(Geselle)의 자격을 얻는다. 이후 경험을 쌓고 마이스터 학교를 다닌 뒤 4개의 마이스터 시험에 합격하면 끝끝내 마이스터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제빵사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여전히 처음 업장에 들어가면 청소와 시야기(마무리 작업) 등 빵 반죽과 깊게 연관되지 않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생활이 새로 후배가 들어오기까지 지속되다 보니 한 명의 제빵사로서 성장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 예측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가게에서 다루지 않는 제빵 기술과 지식은 습득하기 어려우니 한 가게에서 오래 일을 한다고 해도 한 명의 제빵사로서 오롯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하나의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무작정 인내해야 하는 미지의 시간이 아니라, 충족해야 하는 요건들이 정해져 있다 보니 보다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능하고 그 과정이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가 되어 일정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갖춘 제빵사가 되기까지 좋은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Q. 일본의 제빵업계가 일손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가게 운영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는지?
안타깝게도 일본 전반이 노동의 수요보다 공급이 낮은 현실이다. 다만, 나의 경우는 적지 않은 양을 만들고 있음에도 거의 주방에서 혼자 빵을 생산하고 있고, 하루 노동 시간이 7시간 정도다. 빵의 가짓수가 적으며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심플한 식사빵 위주로 생산하고 있기에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하다. 아침 9시면 일이 끝나기에 하루 동안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 기분이다. 또한 혼자 빵을 만들기에 이윤도 많이 남길 수 있다. 결국 자신이 어떤 형태의 업장을 운영하고 싶은지가 큰 관건으로, 제빵일이라고 해서 무작정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향 자체가 혼자서 빵을 만드는 것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에 딱히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없지만, 이런 흐름이 지속됐을 때의 업계의 미래가 걱정되긴 한다.
Q. 독일에서의 수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면서 좋은 점이라면?
나의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라면, 스스로의 신념에 반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밀가루부터 효모까지 기본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고 있기에 몸에 유해하다고 알려진 것들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의 얘기지만, 1년 동안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속한 곳의 제품을 팔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타사의 제품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에 고객에게 그것을 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행동이지만, 그 정도로 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큰 인간이다. 내 가게이기에 내 신념을 자유로이 따를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제품에도 묻어나 손님들이 사랑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Q. 같은 일을 수십년간 해온 장인에게 새삼 귀감에 대해 질문해보겠다. 아마 오랜 시간 같은 생활을 반복해왔기에 자연스레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것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일을 함에 있어 성취감을 얻거나 즐거움을 얻는 부분이 있는지? 나아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빵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상을 지탱해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지?
굳이 뽑자면 러닝이다.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이점도 많기에 꾸준히 달리려 한다. 다만, 질문 자체가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 만들기를 좋아하고, 특히 직업으로 삼고 있는 빵을 만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기에 이 행위를 지속해나가기 위한 귀감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게가 아무리 성공했어도, 많은 스태프들을 고용해서 생산량 을 늘리는 일은 일절 고려치 않는다. 내가 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에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가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좋아하기에 과정 안의 모든 행위들이 즐거움 그 자체다.
Q.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일본과 한국 등 빵을 열심히 수련중인 젊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중요한 자질이라면 열정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단발적이고 단기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열정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대로 빵을 만드는 것은 어찌보면 꽤나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열정의 유무에 따라 같은 일을 반복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사사로운 발견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쌓여 결국엔 보다 맛있는, 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만의 확실한 기준 혹은 굳은 심지가 있었으면 한다. 잘 팔린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다양하게 경험하되 자신만의 기준에 반하는 것은 포기할 줄도 아는 자세 말이다. 빵을 만드는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 자신만의 기준도 확고해질 텐데, 그 기준이 없으면 계속해서 유행하는 것을 따라가야만 일시적인 안정감을 얻고 계속해서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따를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없고, 끝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빵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Q. 일본보다 빵문화가 보다 깊게 뿌리내려 있는 독일에서 수년 동안 배운 것 중 가장 큰 유산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기본적인 원재료부터 제법적인 기술 부분까지, 빵 만들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웠다는 것이 가장 크게 와닿는다. 체계적으로 배웠기에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이상적인 빵을 현실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빵을 만들면서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다. 만약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다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경우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시행착오에 불필요한 시간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문제점에 맞닥뜨리면 그 원인을 어느정도 추려낼 수 있었기에 비교적 단시간에 내가 원하고자 하는 지점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지금이야 많은 빵집에서 하드 계열빵을 굽고 있지만 마츠자키상이 독일에서 돌아와 독립을 한 시점에서는 양빵, 메론빵 등 카시빵(달콤한 반죽의 빵)이 주류인 시대였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꽤나 매니악한 하드 계열 중심으로 한 빵집을 오픈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는지?
물론 걱정은 있었다. 당시의 일본은 지금보다 확연히 심플한 식사빵이 식문화로서 자리잡기 이전으로, 빵하면 떠오르는 건 단팥빵과 메론빵과 같은 단과자빵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빵의 종류에 있어서도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약 빵이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내가 만들고 싶은 빵은 계속해서 만들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 부분에서 타협할 것이었다면 제빵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지 않았을까 싶다.
"좋아해서"라는 짧은 한 마디는 장황하고 그럴듯한 말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든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먼 길 향하는 수고스러움도 '보고싶어서'라는 마음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듯,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마츠자키상의 굵직한 한 마디에 그를 향했던 많은 궁금증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월간 베이커리 뉴스 / 백결 특파원 ruflt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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