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라 중소기업 형태로 사업을 하는 것이 적합한 업종 및 품목을 말한다. 대기업이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중소기업들이 경영 악화 등을 겪게 될 경우를 막기 위해 사회적 합의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3년간 해당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 자제가 권고된다. 이는 한 차례 연장 가능해 최대 6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지난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의 권고에 의해 제과점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대기업의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확장을 막아 동네빵집과 프랜차이즈가 상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규제를 통해 동네빵집의 500미터 안에는 ‘파리바게트’, ‘뚜레쥬르’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들어설 수 없게 됐다. 한 차례 연장돼 6년 후인 2019년 해당 규제는 만료됐다. 이후 (사)대한제과협회가 대기업(SPC파리크라상, CJ푸드빌, 롯데웰푸드, 신세계푸드, 이랜드이츠, 대우산업개발, 하나호텔앤리조트, 홈플러스홀딩스 등)과 5년 효력의 상생 협약을 맺어 대기업의 확장 규제는 연장되었으나 올해 8월 6일 종료된다.
전문가들은 상생 협약이 소상공인 스스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보호 장치로 작용하며, 지역의 소규모 동네빵집의 성장과 한국 베이커리 시장의 황금기를 여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프랜차이즈 빵집의 골목상권 진입을 억제하는 효과를 냈지만, 커피전문점, 편의점, 대형마트 등 규제를 받지 않고 빵을 판매하는 곳이 늘어났고 도심 외곽에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가 생겨나는 등 제과점업을 둘러싼 환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지적했다.
실효성 논란, 10년 묵은 빵집 규제
제과점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2019년부터 자율 협약)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기업형 베이커리의 폭풍 성장이다. 기업형 베이커리는 최근 10여 년간 우후죽순 늘어났는데 적게는 100평에서 1,000평 넘게 운영하는 곳까지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 브런치 카페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곳이 많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한 사례가 더 많다. 때문에 이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한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동네빵집을 보호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확장을 억제했더니 기업형 베이커리만 늘었다”며 난색을 표했다. 또 프랜차이즈 빵집의 진입을 억제하는 효과는 거둔 반면, 규제를 받지 않고 빵을 판매하는 곳은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은 1만 개 이상의 점포망을 무기로 빠르게 시장에 침투해 자체 프리미엄 베이커리 브랜드를 속속들이 출시했다. 이커머스 역시 마찬가지다. 마켓컬리 등 통신판매업의 베이커리 비중이 늘고 있다. 심지어 외국계 베이커리들은 규제를 받지 않고 한국 시장에 마음대로 진출하는 중이기 때문에 국내 프랜차이즈가 오히려 역차별 받고 있다는 평이 많다. 특히 팬데믹 이후 온라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춰 규제도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소상공인의 자생력 확보
제과점업 대·중소기업 상생 협약은 골목상권 보호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다. 소자본 자영업자들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확실히 불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가맹점 수를 지난해 대비 2% 이상 늘릴 수 없었기 때문에 파리바게뜨는 2013년 3,220개에서 2023년 3,428개로 6.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뚜레쥬르 또한 2013년 1,258개에서 2023년 1,321개로 매장 수가 크게 확대되지 못했다. 또 점포 간 거리가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협약 덕분에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고, 소상공인들에게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소상공인 스스로 자생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최근 고물가 속에서도 대기업 계열 베이커리를 능가하는 가격과 품질의 소규모 지역 베이커리가 전국 곳곳에 성업하고 있다. 이른바 ‘동네빵집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동네빵집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곧 국내 베이커리업계 생태계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는 소비자들 역시 다양한 빵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윈윈하는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해외 사례는
현재 일본은 ‘중소기업의 사업 활동 기회 확보를 위한 대기업자의 사업 활동 조정에 관한 법률’을 시행 중이다. 해당 법률은 대기업에게는 중소기업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범하지 않는 의무를, 중소기업에게는 대기업의 동종 업종 진출 조정 권고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대기업의 상권 제한보다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 인도는 과거에 한국과 비슷하게 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보호제를 운영했지만 시대에 따른 소비 변화에 의해 2015년, 품목의 보호를 해제한 바 있다. 제과점업을 둘러싸고 지난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김에 따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규제 대상을 확대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동반위는 대기업 제과점 출점 제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 2월 밝혔다. 현재 동반위의 임기가 오는 4월에 종료됨에 따라 협약에 대한 논의는 5월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달라진 환경, 그리고 달라질 환경을 고려한 더 나은 상생 방안에 제과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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